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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잔혹한 멜로와 잔혹하지 않은 호러


최근에 영화를 몇 편 보았습니다. 노잉은 4월이 끝나갈 무렵에 봤구요, 어린이날에는 박쥐를(어린이날과 박쥐의 개연성...)봤습니다. 노잉은 예고편을 통해서 접한 후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영화였지만, 박쥐는 동행인의 의사에 의해 봤습니다. 저는한국영화는 잘 몰라서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니 감독의 스타일이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동행인 C님을 통해 학습 당했어요.그것도 영화가 끝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들었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에는 어떠한 지식도 없었죠. 뭐, '이 영화는 종전의뱀파이어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겁니다.'라고 말하는 감독의 인터뷰는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만 미리 말하자면 완전히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뱀파이어 영화였어요. 굳이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종류의 뱀파이어 영화였죠.

박쥐가 뱀파이어 영화라고는 해도, 아무튼 호러는 아니었어요. 장르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콕 집어서 말하자면 인간 본성에 대해 있는 그대로, 잔혹하게 드러내는 일종의 드라마, 에로 뭐 이런거 아닐까 해요. 노잉도 그렇구요. 네이버 영화 정보를 검색해 보니 노잉은 [서스펜스, 스릴러, 미스터리, SF], 박쥐는 [멜로, 애정, 로맨스]네요. 하지만 전에 썼던 간단한 노잉 평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아주 불편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야 감독 스타일이 잔혹하니까 그렇다 치고, SF 미스터리 영화인 노잉도 불편했다니까요, 무서운 장면은 눈을 꼭 감고 봐야만 했습니다. 귀도 꼭 틀어막았어요. 영화가 너무 잔혹했거든요. 수백명의 시민들이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탈선한 지하철에 깔리고, 갈리고, 찢겨 뒹굴었습니다. 영화는 무섭게도 그 장면을 승무원석에서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마치 볼링 핀이 볼링공에 맞고 튕기듯이 큰 전면 창유리에 온통 피가 튀면서 사람들이 튕겨나가는 장면은 절규, 비명, 나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잔혹함의 압권이지요. 제게 이 기억은 마치 흉터처럼 지워지지 않고 각인되어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두 영화가 제가 영화관에 가서 본 최근의 영화 두 편인데 공교롭게도 제가 좋아라 하는 헐리우드 B급 슬래셔무비, 호러물, 좀비물이 아니었어요. (그런 등골 서늘한 영화가 개봉하기엔 약간 이른 타이밍이긴 합니다) 반대로 생일에 받은, 노트북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DVD 플레이어로는 주로 호러 영화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에 국전에서 구입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아직 못봤지만(어린이날과 연쇄살인영화의 개연성....) 친구 maryalice양이 빌려준 B급 호러인 Dead end는 가장 최근에 본 DVD 입니다. 호러감을 증가시키기 위해 새벽 3시부터 불을 다 꺼놓고 시청했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미리 말씀드리자면 진짜 괜찮았습니다. [개뿔 다 꿈]식의 뭔가 허무한 엔딩도 아니고, 소재나 소재의 표현력도 좋았고, 마지막에 추리극이라도 본 듯 '아, 이거였구나, 그래서 그 때...'하고 영화를 다시 짚어보게 되는 것도 B급 영화치고는 놀랍도록 만족스러웠습니다. 지금도 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할 수 만 있다면 할인타이틀일테니 추천해드릴게요. 잘 만든 호러나 B급 호러, 혹은 그 두가지를 모두 좋아하시는 분은 꼭 보세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도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예요. 일부 장면에서는 실눈을 뜨고 보기는 했지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흥미가 생겨 원작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봤는데, 확실히 수작이더군요. 심지어는 이 영화를 모티브로 [심야 영화 - midnight movie]라는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체의 일부를 입고 공구에 가까운 흉기를 휘두르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죠. 이 영화도 괜찮은 B급 영화입니다. 후반에 가면서 가족영화처럼 되기도 하고, 맥락이 끊겨 후반부가 전혀 다른 영화처럼 되기도 하지만 조악한 효과로도 충분히 무서운 느낌을 잘 살렸고, 또 다른 공포 영화 [헌티드 힐]에서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공포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텍사스...로 돌아가, 이 영화에서도 잔혹한 장면이 나옵니다. 슬래셔 무비에서는 빠질 수 없는 장면이겠지요. 뾰족한 것들이 휘감겨 있는 몽둥이, 맹렬하게 돌아가는 체인쏘, 색을 밝히는 조연들은 신체의 일부가 잔혹하게 절단되고(공포 영화의 법칙이죠) 잘난척 하던 악역들도 주인공의 반격에 신체 상해를 입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잔혹하지 않습니다. 끔찍하지만 깜짝 놀라고 잠깐 두 손을 움켜쥘 뿐, 무서운 장면은 전기톱을 휘두르는 살인마가 주인공의 바로 뒤까지 쫓아와서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놓치고 마는, 혹은 살인마를 무사히 피했다고 생각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그녀의 등 뒤에서 튀어나와 숨통을 틀어막는 살인마의 손 정도예요. 잔혹하게 고문당하는 조연들은 주인공의 공포감을 높이는 데 이용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은 살아남잖아요. :) 조금은 다쳤지만 아슬아슬하게 따라오던 살인마에게 최후의 한 방을 날립니다. 나름대로의 인간 승리, 해피엔딩이겠지요.

하지만 호러가 아닌 영화들은 오히려 잔혹합니다. 요 며칠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인간은 나약하고, 쉽게 다치고 아프고 죽습니다. 어떤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죽어가고, 다치고, 그 아픔은 오래도록 리얼하게 눈 앞에 재생됩니다.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공포와 고통과 죽음이 눈 앞에 있어요. 이것은 즐기기 위한 공포가 아니예요. 영화는 관객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싶은거겠죠.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정도예요. 영화를 몇 편 봤는데, 공포 영화보다 공포가 아닌 영화가 더 보기 힘들더라. 무섭고, 그날, 그리고 그 다음날, 그 다다음날까지도 계속 생각나는, 그런 잔혹함이 있더라는 겁니다. 저는 공포를 좋아해요. 하지만 잔혹한건 싫어요. 연관 없는 사람들이 죽고 아파하고 비명을 지르는 건 그만 보고 싶어요.

by Jodian | 2009/05/21 09:23 | RECORD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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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댕구리 at 2009/05/21 09:39
시원시원한(?) 영화들 보셨네요.
그래도 역시 제일 시원한 영화는 샤이닝이 아닐까 싶네요ㅎ(귀여운 잭니콜슨이 나오는ㅋ)
Commented by Jodian at 2009/05/22 09:05
등골이 오싹오싹했어요. 'ㅂ'
(히얼 이즈 쟈니이이이이~)

여름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들이 많이 기대가 된답니다. 드래그 미 투 헬(...제목 센스가..)의 예고편 보면서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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